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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기록의 시대

by 나잘살고있니? 2022. 8. 4.

요즘은 가히 기록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는 강아지 키우는 하루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해서 조회수를 얻고,

누구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팔오워수를 얻고,

누구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전통한식 레시피를 글로 올려 호응을 얻는다.

 

2010년대 후반부터 나의 일상을 기록할 수 있는 툴(tool)도 다양해진 반면, 그 내용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들도 일관화되서도 그런 양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툴의 다양화>

1. (2010~2011)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다양한 툴이 앱의 형태로 내 손아귀로 들어오게 되었다.

2. (2014~2016) 미러리스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영상장비들이 소형화, 견편화가 되었다.

3. 인과관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음향장비, 드로잉 장비들도 그 흐름에 맞춰 소형화,간편화가 되었다.

 

<플랫폼의 획일화>

1. 소셜플랫폼들이 더 파편화되고, 세계화가 더 가속화가 될 수록, 사람들은 한 쪽 플랫폼으로 쏠리게 되었다.

2. 일부 소셜플랫폼들이 자신의 정치잭 견해를 어필하는 곳으로 성격이 변하면서,

심적 불편함이 덜한 숏폼(photo, reel) 플랫폼이 뜨게 되었다.

3. 그 중 유저들에게 가장 창의적 자유도를 높게 준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이 빠르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4. 인스타그램와 유튜브가 전세계적으로 대세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간 파편화되었던 아카이빙(기록행위)이 합병되었다.

 

신기한 점은, 이렇게 플랫폼이 획일화가 되었지만, 그 안에서 파생되는 그룹들은 상당히 세분화(niche)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골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떡볶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교류하고,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고...수십년동안 우리는 대중적인 드라마, 대중적인 영화 앞에서 열광했는데, 알고보니 우리 안에는 수많은 취향들이 있었고, 멍석만 깔아주면 세부 그룹들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대중은 신기루 일뿐이고, 대중은 니시(niche)의 합인 것일까? 물론 때로 알고리즘이 요즘 뜨는 것들을 보여주는 만큼, 니시 안에 있는 사람들도 순간 몰아치는 파도에 함께 일렁이듯, 유행의 흐름 안에 놓이기도 한다.

 

다시 <기록의 시대>라는 주제로 돌아가보자. 동굴 안에서 발견 된 수만년, 수천년 된 벽화들을 보라. 각종 고대 문서들, 성경을 보라. 인간은 고대부터 늘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왔다. 그 행위를 우리는 이 시대에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긴 하다. 지금의 시대에는 영상과 음성이라는 형식, 그리고 전자화면이라는 장치가 더해지긴했지만, 결정적으로 달라진건, 기록의 주체자가 권위자에서 일반인들로 바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왕의 신하, 또는 귀족, 글을 아는 사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스폰서를 해줄 수 있는 사람, 글과 그림을 보존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 위주로 모든 기록행위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부터 달라지더니, 21세기에 와서는, 신분적, 경제적 권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기록할 수 있고,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게됐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기록의 시대 2.0>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록의 주체자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데 인간은 왜 기록을 할까? 추억하기 위해서일까? 반고흐는 깊은 우울증에 빠진 상태로 자기 귀를 잘라버렸는데, 그 이후에 자기 초상화를 그렸다. 그런 모습까지 추억하고 싶었을까? 고대 조상들의 기록행위들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동굴 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을 보며 고대 조상들은 그 다음 세대에게 먹잇감을 사냥하는 법을 교육했다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과 말씀을 기록해 그 다음 세대가 그것을 잊지않고 지킬수 있도록 해준다. 고대 시절, 기록은 기억의 세습이었다. 기억은 한 인간에게 제한될수 있고, 퇴화될 수 있지만, 기록은 공동체에게 이전될 수 있고, 보존이 가능했기 때문에. 지금 시대를 봐도 이런 모습이 우리 안에 여전히 있는것은 아닐까. 우리의 기억은 제한되기 때문에, 내가 갔었던 그 콘서트의 모습을 가장 이쁘게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 내 공동체에게 그 기억을 이전시키는 것이다.

 

기억은 우리 한명 한명의 정체성을 만든다. 우리가 하루 하루 겪는 일들이 기억이 되어 현재를 살고, 또 미래를 살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어쩌면 우리 안에는 소멸되고 싶지 않은, 영원을 향한 갈망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과거 기록들을 하나씩 쌓으면서, 과거의 일들이 현재에도 살아있도록 한다. 그리고 그 기록을 공동체에게 공유하면서 내 기억이 이전되어 미래에도 보존되길 원하는 것 같다. 기록행위를 통해 나의 모든 순간을 영원에 맞닿게 하는것 아닐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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